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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장군의 육사 내 흉상 철거가 확정되었습니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세상의 가장 핫한 논쟁인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홍범도함 잠수함 이름 변경 등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저는 정치인도 아니고 그 세계에 빠져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네요. 홍범도 장군이 어떤 인물이고 그의 업적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현재 뉴라이트 세계관이 일으키고 있는 실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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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그는 누구인가?
홍범도장군의 흉상 철거가 공론화 된 날이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시작된 날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정말 공교롭고 씁쓸합니다.
홍범도 장군은 1868년 8월 평양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포수로써 호랑이도 때려잡을 기개를 가졌었다고 전언됩니다. 그렇게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일본의 무략 침탈로 나를 빼앗기게 되자 1895년 을미의병당시 일본의 침략에 맞서 의병을 조직하고 독립군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입니다.
그는 현대 역사책에도 기록될 만한 수많은 항일 전쟁에 참전하였고 혁혁한 공을 세운 자랑스러운 대한의 독립군 리더 였습니다. 수많은 전쟁에 참여하여 대한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지만, 안타깝게도 1945년 대한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43년 한국의 땅이 아닌 먼 카자흐스탄의 작은 마을에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향년 75세
홍범도 장군은 먼 거리에서 작은 유리병의 입구를 정확히 맞추는 사격실력을 보유했었다고 합니다. 포수로써 유능한 사격솜씨를 가졌었던 것인데, 나라를 빼앗기게 되자 그는 의병을 조직하고 짐승이 아닌 왜놈을 사냥하겠다고 천명하였다고 하죠.
홍범도 장군은 약 700여명의 군대 의병을 조직하고 함경도일대 및 강원도 북부를 무대로 항일 독립투쟁을 하였습니다. 역사 문헌에 의하면, 홍범도 장군은 정규 일본 군대를 상대로 37회에 달하는 전쟁을 치러냈다고 하는데요. 과거 아내가 일본군의 인질이 되어 홍범도에게 항복과 귀순을 요구하자 사랑하는 아내이지만 나라와 바꾸지 않는다며 실낱같은 목숨 없어지면 그만이나, 이 나라 내 조국을 너희 같은 왜놈들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기개를 보였다고 합니다.
홍범도 장군의 업적
봉오동 , 청산리 전투
홍범도 장군에 대해 온 국민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전투는 봉오동전투 및 청산리 대첩 일 것입니다.
1920년 일본군은 최대 군대 인력을 파견하며 봉오동을 습격하였습니다. 이 당시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 700여 명을 진두지휘하며 3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치렀고,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당시 압도적인 무기로 모든 전쟁에서 독립군을 제압해 오던 일본군에게 치명상을 일으킨 최대 승전보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9월에는 청산리전투에서도 김좌진 장군과 함께 독립군을 이끌고 참전해 승전보를 울리기도 했습니다. 청산리 대첩에서는 일본군이 서로 독립군으로 오인하게 하여, 서로를 향해 발포를 하게 만드는 기가막힌 군사전술을 구사하기도 하여 아직도 전쟁 사에 미스터리한 군사전술로 평가받고 있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한복판에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일제치하 한복판에 우리나라에는 홍범도 장군이 있었습니다.
홍범도 장군 영면에 들다
홍범도 장군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 업적으로 당시 일본군과 맞서 싸우던 소련의 레닌 정부(레닌은 미국과 손을 맞잡고 제국주의 일본과 맞서 싸웠습니다)의 협조를 얻어 고려혁명군관 학교를 만들어 독립군 양성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자유시참변으로 알려진 소련당국의 대한독립군 무장해제령으로 인해 이르크츠크로 이동, 소규모나마 한인들을 모아 독립군 양성을 하였다고 하죠.
그러나 레닌 정부가 물러나고 스탈린 정부가 들어서며 상황이 180도 바뀌게 됩니다. 스탈린은 과거 중공과 함께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며 오히려 일본과 손을 맞잡기도 하였는데, 당시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1937년에 연해주 내의 조선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 이주를 시키게 됩니다. 지도자급 장교 2800을 숙청하는 사건이 있었으나 당시 70세의 노인이 된 홍범도 장군은 어렵게 살아남아 카자흐스탄의 작은 마을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됩니다.
홍범도 장군의 말년은 정말 눈물나게 안타깝습니다. 극장의 수위로, 정미소의 근로자로.. 대한 조국의 리더였던 그의 마지막은 너무나 초라했으며 조국의 광복을 앞둔 1943년 10월 25일 쓸쓸히 영면에 들게 됩니다.
홍범도 장군 유해의 귀환
2021년 8월 대한민국 정부는 카자흐스탄 정부와 협약하여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대한민국으로 송환하게 됩니다.
송환된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2021년 8월18일 국립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에 안장되었고 많은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게 되었죠.
송환 당시 문재인 정부의 외교부에서 카자흐스탄 정부와 이루어낸 이 쾌거에 온 국민이 박수를 보냈고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대한민국 공군이 호위 무사가 되어 홍범도 장군 유해를 호휘하던 그 비행은 많은 이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임을 느끼게 해 준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이전에도 수많은 유해 송환 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도 북한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무사히 국내로 송환을 이끌어냈던 당시 외교관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홍범도 장군은 공산군 이었다? 뉴라이트 세계관의 실수
홍범도 장군은 수많은 전쟁을 일본군과 치렀습니다. 당시 제대로 된 군대도 조직 체계도 없던 시절,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군대를 이끌었던 그였기에 당시 그의 업적을 칭송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홍범도 장군이 훗날에 공산주의 독립운동 단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입니다.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혁명을 저지하기 위한 시베리아 내전에 참여한 일본군은 연해주에 진격하며 무장 독립군을 소탕하려 하였고, 이때 일본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같은 목적의 소련 공산당과 손을 잡게 된 것이죠.
당시 레닌 체제의 소련은 미국과 함께 무략 침공자 일본군을 제압하기 위한 같은 팀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멋 훗날 냉전시대를 거치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확연히 갈라서게 되지만, 당시 레닌정부의 소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탈린의 소련이 아니었습니다.
향 후 스탈린 정부가 들어서게 되고, 대한민국의 독립운동 단체를 무장해제를 요구할 때 홍범도 장군은 소련의 제안에 반대를 표명하다가 더 이상의 비극적 사태를 막기 위해 이를 따르자고 주장하게 됩니다. 당시 무장해제는 혹시 모를 반란을 막고자 소련이 독립군에게 한 제안이었는데, 이에 반발하며 끝까지 투쟁한 독립군들은 스탈린의 소련군들에게 무참하게 무력진압을 당하고 살해를 당하게 되죠. 이 사건이 바로 자유시 참변입니다.
이 시기에 홍범도 장군이 공산당과 손잡고 독립군 사살에 동조한 것이라며 그의 그동안의 업적을 깎아 내리는 논리를 펴는 것이 지금의 뉴라이트 세계관에 깔려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시 홍범도 장군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발 후퇴하여 우회하는 협상력을 하지 않아, 수많은 독립군들이 사살된 것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했다고 전언됩니다. 홍범도 장군의 판단이 맞았던 것이죠
일본에 저항하기 위하여 소련과 힘을 합치게 되었고, 소련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를 무너트리기 위해 자연스럽게 공산당에 입당하게 된 부분이 전부인 그에게 뉴라이트 후손들은 그를 마치 김일성 주의자로 치부합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자료에 의하면, 홍범도 장군은 다시 자유시참변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많은 병사들과 함께 통곡을 하였다는 기록만이 남아있고,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참변에 가담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있지 않습니다. 그가 소련과 내통을 하여 독립군 사살에 동조를 했다고 주장하는 뉴라이트들의 어떠한 증거도 없는 셈이죠.
2000년부터 급격히 세력을 불려 온 뉴라이트는 극심한 극우세력으로 다양한 국가적 이념 갈라 치기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조선에 대한 폄하, 권위주의 및 독재 찬양, 일제 치하의 임시정부 부정, 건국일 제정 및 주장 등이 그들의 세계관입니다.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거쳐 대한민국이 근대화 된것이다. 식민지는 정당했고 훗날 대한민국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당연히 독립운동은 백해무익한 행위였고, 당시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무시하고, 오로지 물질을 탐했던 친일파 매국노들을 칭송하는 뉴라이트 세계관.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는 뉴라이트 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독립군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민족의 자랑인 독립군의 상징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제거하려는 당신들의 주장..
자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습니까?
홍범도 장군의 흉상철거, 홍범도함 이름변경 이슈. 훗날 역사가 이 모든 부정행위를 심판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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